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문학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book.jpg|height=28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book1.png|height=280]]}}} || || '''{{{#FFF 무굴 제국은 책 속에 글과 함께 삽화를 넣었다}}}''' || '''{{{#FFF 페르시아어 시집}}}''' || 인도의 문학은 무굴 제국 시기에 들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타고르]]와 함께 인도 역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툴시다스(तलसदस)'가 바로 이 무굴 제국 시기에 활동했다. 툴시다스는 [[힌두교]] 신자로서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찬드라]]의 일대기를 정리하여 재집필하고 [[산스크리트어]]와 아와디어로 종교적인 시들을 짓는 등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또한 무굴 제국이 궁정어로 [[페르시아어]]를 채택하고 이를 장려하면서 페르시아 문학이 큰 발전을 이루었고, 사람들에게 문학작품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기 다른 지방언어들로 씌어졌던 작품들을 모두 [[페르시아어]]나 [[힌디어]]로 번역하여 전역에 퍼뜨림으로써 인도 문학의 확산에도 큰 기여를 했다. 당시 페르시아 문화권에서는 문학과 시에 능통한 것이 엘리트층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때문에 궁정의 대신들과 황제들은 너나할것 없이 문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만 했다. 덕분에 페르시아어 문학은 예술을 사랑했던 악바르 황제의 시기에 그 정점을 찍었고, 무굴 제국의 행정체계를 기록한 '아인 아이 악바리', 인도의 무슬림 역사를 다룬 '문타캅 울 타와리크' 등 페르시아어로 작성된 서적들이 여러 권 편찬되기도 했다. 또한 후대의 자한기르 황제가 인도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한 '라즈마나'를 편찬했고, '바부르마나'와 '악바르마나'와 같이 선황들의 일대기를 담아 미화한 역사책들도 대거 찍어내었으며 샤 자한 황제와 아우랑제브 역시 악바르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여전히 문학에 많은 관심을 들였다. 한편 [[산스크리트어]]는 힌두교의 제례에 사용되던 유서깊은 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믿었던 무굴 제국 시기에 상대적으로 문학적으로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다만 이 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었을 뿐이지 여전히 힌두교를 신봉하던 인도 동부와 남부의 영주들은 산스크리트어 문학가들을 계속 후원하였으며 덕분에 '시링가 다르판', '히어 슈바감' 등의 시집들이 등장하였으며 '파르시 프라카시'라는 이름의 산스크리트-페르시아어 사전이 나오기도 했다. 덕분에 어려운 산스크리트어 앞에서 쩔쩔매던 타 문화권을 사람들도 산스크리트 문학을 한층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13대 황제인 [[무함마드 샤]]는 [[우르두어]] 시인을 자신의 궁정에 초대하여 시를 듣기도 했고, 이후 북인도 지방에 우르두어가 널리 퍼지면서 우르두 문학 역시 번성한다. 무굴 제국의 시기에 지어진 시들은 이전과는 달리 가사와 운율이 한결 더 정형화되어 있었으며 시와 문학작품들의 일반적인 길이도 더 길어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